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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yunamhan [작성일 : 2012-07-19 07:52:49 ]  
홈페이지
http://kyunamhan.net
제 목
Hybridization Prologue




이즈음(2011.01.15, Seoul)새로운 변화를 일구고 있습니다.
동양화와 서양화를 완전히(?) 짬뽕(Hybrid,Synthesis, Converging) 시키는 작업입니다(JangWei Studio)
여러요소를 다양하게 섞여 잘 여과 되도록 정성스럽게,
조심스럽게
휘젓고 있습니다.
새롭고 신선한 맛..
기나미 삶속에 배어있는 일체의 것을 가마솥에 훌훌 털어 넣고 있습니다
. #404 가마솥





Kyunam Han(2007),'Central Park South in Blue',Acrylic on Canvas, at Hongchon Studio, Madame Suh

Source. kyunamhan.net


ㅎ.
서울과 뉴욕 사이 '오리'와 '토끼'(?) 기나미 고기집을 열었나? ㅛㅛ?
체르니 가마속 초고속탕(?).
.ㅎ








at Saddle River(2009),<임 종빈 변호사/이영희 부부의 콜렉션, 'Dynasty', 'Old Palace', 'Four Season III' br>










시간(Time)은 현재( Being,Reality,Presence)에 머물러 있으나 생각(Mind,Intentionality, Spirit) 은 과거 혹은 미래 지향적으로 변하는 모양입니다.
1980년 -1985- 1986. Fort Lee. Tenafly Studio





Old Palace(1983-),Bamboo Brush Painting in Black ink on Rag hanji paper mounted on canvas 5 ft X 24 ft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 Dream On)
옛날 OSU 졸업 후 1977-1980 기간동안
뉴져지, 프린스톤, 트렌톤, 포트리를 옮겨가면서
한지와 캔버스의 결합을 시도 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인천에서 자란 기나미가 인천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옮기기 까지의 가상적인 긴 여로를 그린 그림입니다.
오른 쪽의 인천 화수동 월미도의 풍선배 어부들이 오가던 부둣가에서 시작
왼쪽의 경복궁 삼청동 가회동에 이르는 풍경을 큰 캔버스에 그린 그림입니다.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No 27 "Dream on; Landscape Mural:1996-1997, Acrylic on Canvas 92" x 472"
Presented at Blue Hill, Pearl River, New York
reviewed by Patcham Shinn



또 다른 윗 그림(강산무진도)은 이로부터 10년 쯤 후
김포 대곳면 약암리와 /상마리와 경기도 용인의 수지면 유은영선생의 종이공장을 오가며 그린 12 폭(Pannels) 그림입니다

뉴욕 불루힐 전시 때 찍은 사진인데
종이가 아닌 아크릴로 화선지의 느낌을 낸 작품입니다.
그림의 높이가 2m, 폭 12m 그림입니다.

간간이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전통과 현대의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었습니다.
이때는 기나미가 뉴져지 Tenafly 81 Hudson Avenue집에서 탱자 탱자 아래 점 그림 들을 완성 하고 있을 때 입니다.
이와 함께. Artsforum Gallery ( 57가 W 21에 있었는데 이름을 바꾸어 현재 New Art Center 580 Eight Avenue @ 38th Street.NYC 10018 로 옮겼음)전시를 위하여 'Dynasty' ' Manhattan Boogie Woogie'를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Gallery International에 이작품들을 출품하였습)






Four Seasons, 사계(四季) Oil on Canvas, (1984-1988), 6 Ft x 25 Ft





분명 하나의 실체 그림을 그리는 관행 방식( Proposition)중 하나는

(1)서울방식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를 동양식 오리 방식이라 부르겠습니다
(붓,종이 묵,나무,흙이 주가 된)

또 다른 방식은
(2) 서양식 토끼 방식(?) 이라 부르겠습니다.
미술사가 크게 두 가지 로 나뉘어 작은 가지들로 분류되어 왔다는 것은 재미있습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줄기세포가 다른 상태로 달리 진화되었기때문일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나미의 그림은 돌연변이 인 듯합니다.
어떤점이 돌연변이 인가?

. 생각, 형식들과 , 그들의 줄기세포. 진화의 배경,변이의 과정, 단계단계를 점검해 보아야 할것입니다.
ㅎ.
자가진단(?)이냐구? Yes!.
같은 색. 같은 빛, 같은 소리. 같은 언어성인데 각양각색
해석과 실재(實在) 사이에서 표현양식이 오늘처럼 달리 빚어질 수 밖에 없었다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다르면서 같고 같으면서 다른것. ^ㅛ^

바로 그 점입니다.
다르지도 않고 같지도 않은 그것
나의 마음과 체험에서 나온 100% 순수한 한규남의 것이 있을 것입니다.

서울 방식' 청둥오리' 반 뉴욕 '토끼' 딱 반 반 섞으세요~! .ㅋ. 일품요리가 되겠네요.> ^ㅛ^ ^ㅎ^

미술과 직접 관계되지 않은 이론들을 일일이 어찌 비교할 시간이 있을 가 만은.. ㅉ
종교. 철학. 윤리. 사상. 전통적 관행들 어정쩡 왈가 왈부했다간 쌈 밖에 더 생기겠씨유?~!>
^ㅎ^ .


엄청난 방식의 차이점/대조/혼돈/다양성 밑에 깔려있는 근본적인 것부터 밝혀야 겠지요?
점...
실체가 어디에 놓여있느냐에 따라 드라마가 항상 달라 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난 다음엔
현실을 해석하고 적응하는 방식이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선샹님! 가짜가 진짜보다 판을 칠 때 더 재미있잖아요?.
선샹님도 적당하게 가짜가 되어 보세요>
아무리 가짜의 세계라지만 데미안 허스트의 해골 처럼 진짜 보석을 보여야 되는 데
가짜들이 계속 가짜 싸구려를 들고 범벅 하여 달겨드니깐 문제.ㅜㅜ.
<선샹님! 이즈음엔 손만 올렸다 내렸다하면 가짜 그림이 진짜로 변하는 곳이 있어요>.
ㅜㅜ ㅠㅠ.
잠정적 현상이겠지.
시간이 가면 싹! 씻겨 내려가던지 땡볕에 말라 죽어버리겠지만
정화(靜化)의 노력들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구만이라.
들리는 소문에 이젠 가짜를 들고 해외 옥숀에 나가서 진짜로 판정 받는다는 소문도 있는 데.
.ㅋ.
돈을 싸 받들고 바쳐야 감투를 분배받는다는 소문 .
ㅎ.
<선샹님! 모르는체 비껴 가세용!>
맞아
ㅛㅛ.
Bull Shit! It Stinks!.
그래도 기록은 해 두어야.<선샹님! 시간이 가면 가짜들의 운명은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강호동 프로에 한번도 나가보지도 못한 가짜들이 모두들,"영원하라! 영원하라! 가짜로 영원하라!"
ㅉㅉ 이젠 그만들 하시게! ㅎ ㅇ^ 무슨 신기있는 영감을 받았는지?
< 선샹님!그래도 가짜 세상이 더 재미있는 듯해유~!>.
<모르는 척 넘어가세유~ 본전도 안나와요 이게임에 뛰어들지 마세유~!>
맞네 그려!
미안한 이야기인데 서울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있는 풍토가 전혀 아직 화단에서는 준비 되어 있지 않는 듯 하네.
모두들 꿀먹은 벙어리인듯하네. 평론가들은 제도권 줄서기에 바쁘고.. ㅋ. ㅠ..
내가 알고 있는 진짜들은 제도권 밖에서 검투장에 잘 나오지 않고 있네 그려.
뒷짐만 지고 있던가 뉴욕거리에서 변방에 우짓는 새가 되어 있던가'
어디 이런 프로그램 하나 안 생기나?"
"타협이여! 영원히 없어져라! 가짜들이여! 몽매한 대중들을 유혹하지마라!"
이즈음 6년 동안 서울 변방에서 장안을 본 결과
소위 떴다!한 사람들 나는 극소수만 빼놓고 모두 이상하게 보입니다그려.

이는 제도권이 교정을 해주어야 하는 오늘 미술계의 당면 과제라고 생각되네.
내 잘 모르지만 시장/평론/화단/이 더 소맷자락을 걷어부치고 노력을 많이 해야 교정이 될듯하네그려..

평론계 언론이 먼저 정화되어야 할것이네. 돈을 내는 만큼만 진짜를 다루어 주는것이 문제.
진짜들은 관심이 없거나 있어도 쩐이 없거나.. ㅎ..
<돈놓고 돈먹기?>
<에고 선샹님 갈 수록 태산이네요! 왜 죄없는 언론은 들먹이세유~!
벌집과 Dog Shit은 비껴가레 잖아유~!

이런 탄식은 아래와 같은 궤변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ㅜ.
' 나는 생각 하지 않는다'
<상대적인 허구의 가능성을 지닌 실체를>

고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과 연계된 상태에 있지 않는 까닭에>
고로
'나는 사실을 멀리한다'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러나
'나는 사실들을 그리지 않을 수 없다 '
<내 앞에 가로 놓여 있는 현실을 거부할 수 없는 까닭에

고로
'나는 그리고 있을 뿐이다.
'<함께 소통할 수밖에 없다'.>
'설혹 사실이 주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 진실이 파악 되지 않더라도>
'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을 수 없다'
이율배반적인 현실을
'오리인들 토끼인들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냥 살 수 밖에 없다>

<선샹님! 또 언어 놀이 하시넹!>
이젠오리/토끼 놀음에 절대로 속지않는당! ~
Plato의 동굴이던 아니던 위/아래/여기/저기/이쪽/저쪽이든 아니든 ㅋ.ㅠ.ㅠ.
오늘의 태양은 한개 만 있으면 되니깐. 여러 태양이 아니라 종잡을 수 없이 여기 저기서 수없이 나를 기만하더라도 나는 흔들리지 않겠다!.

오! 나에게 오는 어떤 에너지/혼돈/질서/언어/형상/사건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이즈음 유일한 집념이 있다면
부장품을 만들어 현실(玄室,chamber,무덤) 속에 가지고 갈 일.ㅋㅋ.
<선샹님 그냥 묘지에 들고 들어 갈 비문(碑文,생각)이라고 하세유~!>

^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일체를 끊고 가로 세로 캔버스 무덤속에 갇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빛이 되고 색이 되어 레이져처럼 다시 관객님들에게도 숨을 쉬며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무덤 속에서도.. ^ㅎ^
^q^
^t^


심장수술 후 이렇게 생각들이 한때 바뀌였었습니다만..
이즈음 동가 서가 검투사의 짓거리를 하다 보니깐 조금이나마 두려짐이 없어진듯하와.. ^Q^.



이왕 이야기가 나온김에 오리토끼 이야기를 잠깐 이어붙혀야 할 것 같습니다.
원래 벽제묘지 산촌 스튜디오에서 올렸던 글이였습니다.
이사하느라 정리를 못한체 방치됬던 글인데 이야기들을 이제 이어 붙일까 합니다.
<기나미의 생각/글/현실/작품/의 모양새 뻔한 이야기 아니야냐구요?>
맞습니다.
뜬 구름 같이 살았던 묵객의 이야기?...ㅎ..
서울생활 역시 시시각각 뉴욕만큼 강도있게 물살처럼 흘러갔는데 무슨 잡스런 이야기냐구요?.
시간의 저편으로 물살과 함께 떠내려가버려도 여전히 남아 있는 생각과 믿음들
. ^ㅎ^.

서울 이야기도 아니요! 뉴욕이야기도 아닌
벽제도 홍천도 아닌.
<선샹님! 또 피라믿 이야기하실려는 거지유~!~>
아니
< 선샹님! 화석(化石)같은 화두(話頭) 이야기요? >.
<아니 나의 몽유 여신들 이야기입니당. 뮤즈들.
빗물과 태풍에 모두 씻기워 내려갔는데도 여전히 떠 내려가지 않은 흔적(차돌)들처럼 생각들이 변하지 안넹!> > < 이젠 나의 충직한 병사들(?)과 군졸(?)들이 되었습니다.
소리없는 생각들(?)이 기나미를 보호해주고 힘이 되어 줍니다. 선,색,형상.가로 세로 속의 오상(五床)의 군사들이죠. 충성스럽게 기나미를 지켜줍니다..

여기 글 # 338 'On the Wheel of Dhamma :Samatha & Vipassana'에 숨겨졌던 글을 복사하여 다시 올린 다음 작품이야기를 계속해야겠군요.ㅛㅛ







오늘 이야기는 30년전에 콜럼버스 1977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도서관에서 졸업논문을 만들시
우연히 발견한 아래'오리와 토끼'의 그림이야기부터 시작할까 합니다.
삶에 있어서나 작품속에 있어서나 '모순'
그리고 '양면적 상황 속'확실한 진로 판단의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럴 때 무엇을 어떻게 언제 어디로(?)
...왜 이렇게 나를 현재의 코너로 몰고 있는가 를 속 시원하게 쉽게 알 수 있다면 처해있는 역경을 부정하고 깨고 빠져나가는 방법은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겠습니다.
허지만 당시는 정신없이 공부 할 때였었고.. 유학을 떠난다는 것은 일종의 화려한 도피였습니다.
더구나 학부 서양미술에서 고작 B.F.A.를 마치고 겁없이 대학원 연극무대로 입학을 했던것은
실로 엄청난 도전.. 허망된 욕망, 과욕, 허상을 업는 맹목적인 현실 부정의 소산이였습니다.
기나미가 갑작스럽게 바꾼 연극무대미술은(Stage Design in Theater) 거창한 도전이였습니다...
(1) 언어가 첫번째. (2)60년도 집안경제사정 (3)몰상식하게 스스로 편협되게 잘못 배운 서양 문화. 무지
상실감.
학교생활(무대미술 전공)은 꽝(?)이였습니다.
사면초가(四面楚歌)로 둘려 쌓여 막장에 이르렀을 때 다시 미술로 돌아갔습니다.
같은 대학에서 또 몇 년 지난뒤
많이 힘들었을 때
이 모순된 형상/ 오리/토끼이야기를 만난 이후 부터 다시 진로가 잡혔던 것입니다.
나를 살려준 이 만남 이후 기나미의 마음은 확실해지고 단단해 졌습니다.
. 계속 가자!. 공부 하자!. 그림을 그리자!.





오리? 토끼?
현실은 오리이며 동시에 토끼입니까

오리가 아니면 토끼?
하나의 실재(實在,being)가 둘(양면성,Binal, Ambivalent)로 해석되면 어떻게 됩니까?
여럿으로 진실이 해석이 된다면? 도대체 진실이란 뭡니까? 몇 개가 되어도 되는 겁니까?
언어가 관념화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모순(Contradition)된 문제( Absurdity,)임이 틀림 없습니다.
가짜와 진짜 절대와 상대, 우리들이 인식하는 현실은
가끔/항상 이렇게 당혹과 혼돈(Absurdity)된 모순(Irony)으로 연결니다.
기나미야! 따지지 않고 그냥 살아! 라고 한다면 실제의 삶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창조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작가들은 적당히 넘어가질 않습니다.
진실된 해석과 경험속에 작가는 '하나의 삶'과 또 '하나의 다른 삶'을 살고 있기때문이죠.
둘이 되니깐.. 현실 속의 삶과 예술 속의 삶 두 부면에서...우리 모두 본의 아니게 무거운 짐을 진(?) Plato의 동굴 속
애매하고 불투명한 어둠 속 동굴에 갇힌 Prisoner, 혹은 동굴 속 인형극 Puppet그림자들을 구경하는 이상한 국면의 멍청한(?) 관객(?)일 뿐인가요...


30년전에 이와 같은 질문이 주어졌다면 지금과 같이 과감한 변신을 추구했을 것입니다.
아래 그림으로 간단히 해체돤 기표로 된 도면처럼
(1)실재로 실재/형상/조건/국면을 예전대로 이어 두질 않고
(2) 해체하여
두쪽 (삶, 예술)을 모두 다 깨야(Transform, Deconstruct) 합니다.







(Fig.1)After a drawing which originally appeared in Die Fliegenden Blatter
and which can, when accurately reproduced, indifferently see as a duck( turned to left) or seen as a rabbit.







[ 주:원래 Fliegenden Blatter에 나타난 이 도면은 정확하게 그렸을 때 하나의 형상이 둘로 해석됩니다:
Excerpts from MFA Thesis," The dot,its configuration and its Illusion" (1977),Ohio State University




도면들 (Fig 1, 2.3.4.5.6.7.8.9.10)처럼
형상성, 기표, 이미지가 해체되면
원래의 형상이 지시하는 의미의 내연(內緣), 외포(外包), 언어성도 동시에 소멸합니다.
문제를 야기하는 요소들이 직접적으로 없어집니다.
오리이건 토끼이건, 기독교이건, 힌두교 이건,
있건 없건 이것 저것 상관 없습니다.
이렇게 형상과 구조의 의미간에 있을 수 있는 불혐화음은 제거됩니다.
이젠 가볍게 재부팅(?)하면 초월과 상승의 국면으로 이어가게 될 뿐 입니다.....
예술가들에겐 상당한 아픔은 사라지고 최소한 차가운 삶의 현장만은 주어질 수 있는 '응시'의 세계 즉 '구원의 세계'(Survival)(?)로 전환되겠습니다.

양 극단(Extreme Opposite Standing Poles)중 하나만을 '구지 택하여야 된다'는 강요된 조건은 비 합리적인 것입니다.
강요된 양자 택일... 꼭 이거냐 저거냐하는 것은
이것 과 저것 사이의 점진적이고 무한한 진공여백,
일체의 인식과 경험의 중간 비어진 상태
중도(中途,中道,中度,in betweens, in moderation,Balancing Pivoting Point,)를 염두에 두지않는 현상입니다... .

1과 2와 사이에 존재하는 1.002.. 1.004. 1.111..1.2005..침묵/에너지의 세계를 무시하고 있는 셉이 됩니다.
1 과 2 보다는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리적 세계가 더 크고 무한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 하나하나의 위치를 '멤브레인'(Membrane)이라 한다면
1.000000001. 1.0000999999....X. Y. Z.. 또는 Random Sequence는 추적이 불가능 할 뿐만 아니라 무한세계와의 관계설정도 불가능 하게됩니다.
언어와 인식 경험 기존의 철학과 사유체제일체가 무의미하게 됩니다.
소통 불가능한 비논리적 세계에 접하게 됩니다.

<선샹님!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말씀을 하시는 거죠? 아님 법륜경을 읽으신다음 생각이 이런쪽으로 가신건가요?>

아니
천만에요. 졸업 때 였어. 지금도 그래
[혼돈 불확실성 망설임끝에 오래전에 .. 그리고 이어서 생긴 또 달리 이어지는 불확실성..
연속의 사념이 언어로 대치되었을 뿐]
지금도 옜처럼 그냥 시간과 공간 속에 내 사념이 그냥 그렇게 이어지고 있을 뿐이야>

<그런데 선샹님유~! 마냥 이렇게 생각만 흐르기만 하면 정말 무의미하잖우유~?.
.휘이테나 쇼펜하우어니 위트겐쉬타인 말이 맞긴 해두유..
뭔가 맹글어야 되잖우유?
법륜경도 그렇구유~ 노자 장자도 그렇구유~..
. 그게 밥 먹여 주나유?.. 진리에 대한 인식 경험 분석철학,어쩌구 저쩌구..
실증철학 .어휴! 머리아파유~!..
그게 작가 화가 음악인들과 도대체 무슨 직접적인 상관이 있는 거지유? >

맞아 사념과 느낌은 구름같아서 내버려두면 모르는 사이에 개념과 의미가 희미하게 없어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한 예술가들은 다시 그걸 집요하게 쫓아 작품속에 붙들어 놓아야 되.
이걸 집념이라고 해서 종교에서는 버리라고 하는데 작가의 경우는 미쳐도 되요!. 좀 미쳐야 되는거야요!.. 힘들고 무의미한 ...ㅛㅛ.. ㅠㅠ. 악착같이 잡고 추구해야 됩니다. 그걸 문자로 쓰던 소리로쓰던 선 색 형상으로 미치던 캔버스속에 조용히.. 조용히.. 마음속으로 그대의 그림자(몽유여신)와 함께 사랑을 하며 미쳐야 되겠죠.. 일상적인 사랑이 아니고.. 그림자와의 사랑에 미치라니깐!..내마음 속의 그림자 그녀와의 이야기/사랑은 소중한 것입니다. 일상 평상시의 여인들과는 다릅니다. 중성(中性)이 사랑을 느끼면 어떻게 되나요? 일상성을 간과 하면서 사랑할때.. <에휴> 다 집어 던지고 캔버스와 사랑을 할때....!

작품/ 예술성(藝術性)/미(美)의 여신들과 한 바탕 신나게 놀아 보세요!.
철학과 종교와 예술의 구별은 이런 점들속 에서 삶과 미래의 목표가 제 방향 다르다는 점.... 기나미는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선샹님! 우리들은 일단은 예술가들이니깐 뮤즈들과 신나게 놀자구!ㅛㅛ.
가로세로 작품속에서 만들면서 그대의 그림자와 춤을 추세요!.>
'Plato의 그림자'이던 '니체의 그림자'인던 '이태백이의 그림자'이던
'부처님의 그림자'이던 놀아!.유~!..
놀아 보구 이야기 하자구. 작품속에서의 예술 조형 언어들을 끄집어 내면서 놀자구유~?
그림자들이 제멋데로 놀면 그냥 지워버리면 되지유~?..
가차없이 화폭에서나 오선지 상에서나 영상에서나 죽여버리거나 잘라버리거나 지워버리면 된다구유?~. .
황제의 명령데로 할께유~. .. ㅋ
기나미가 황제가 되었다가 선샹님으로 되었다가 ,,.
젠장 기나미 그림자처럼 사네... 그림자가 기나미인가 기나미가 그림자인가? 이쪽 저쪽
<선샹님! 흉내내지 마세유~. 그냥 사세유~.. 그냥유~!>

그림자는 항상 실체의 밖에 있는 법.
실체를 닮아 있는 법. 하지만 안과 밖을 무한으로.. 사이사이 오갈때 대칭의 붕괴는 어느순간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Four Seasons, 사계(四季) Oil on Canvas, (1984-1988), 6 Ft x 25 Ft






실과 허 의미와 실재(Truth,Reality,Presence)사이..
그 모순과 비논리적 허구의 '사이'( In betweens)
지속 되는 연기(緣起), 사유되는 사념, 성성적적(惺惺寂寂), 극대소종횡(極,大,小,縱,橫 의 Macro, Micro들이 지속되는 '사이' '사이'들의 언어와 사념, 단계 사이 사이(Contextural, Transplanal Transmebranes) 해결점과 문제의 본질이 있는 듯합니다.
시간과 시간 사이.
공간과 사건들의 인식.경험.판단.해석.
사이
언어표현의 부적절성과 모호성 그리고 불확실성이 넘치는 연속적으로 연기되는 속박(束縛,Dualism, 양자택일의 이원론)을 탈출/거부/일탈하여
정제된 예술형태로 그림/음악/연극/영화/문학/건축예술로 구성한다면 어떤 색다른 미적/에너지 양식들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기존의 것을 한수 위로 끌어 올리려 하는 실험은 오직< 미술,음악,등 예술 세계에서만 있을 수 있는 일이겠죠?>

현대 물리학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진실과 화가들(한규남)이 느끼고 표현하고자 하는 점이 같은 점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즈음 2010년도 과학이 지향하는 방향/내용/Proposition/명제/와 예술/미학/철학이 지향하는 언어가 거의 흡사합니다. 1984년 사계를 그릴때만해도 기나미는 잘 몰랐던 사실이 있었습니다. (1) 실과 허, 형상 오리와 토끼속에서 점이 갖는 확실성/ 불확실성의 문제 입니다. 이를 위의 사계를 그린것처럼 한동안 많이 시도하였습니다 (2).다양한 Grid 속에서의 선/색/음악성/ 형상/의미/실허의..미적질서 추적이 그것입니다.( Fig 2. Dynasty) (3) 실체와 여백의 문제를 다루는 조합(組合)의 다양성입니다. 양상(fig.1)이 꽤 다릅니다.(예 곽희와 세잔느 폴록,의 여백)





Kyunam Han(1986)Manhattan Boogie Woogie I
Kyunam Han (1986-1988), 'Manhattan Boogie Woogie', 76" X 80', Oil on Canvas >
Mr. John Hong





작가들마다 여백을 처리하는 점에 있어서 아주 다릅니다. 이 다른점을 잘 연구하면 어떤점에서 실행의 관점이 같은 가를 알 수 있겠습니다. 공간/시간/질량/색/빛을 어떻게 다르게 취급했는가는 여백(Enclosure)을 어떻게 처리했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현대 물리학에서 '비었다'(Void, Empty Space)는것은 에너지로 차 있다는 사실을 증명확인했습니다.

이른바 무(無, 허虛, empty space)의 상태속에서는 상태, 반(反),역(逆)의 Proximity, Figure/Ground, Structure/Image, 등등 ... 에너지/형상/기운/질량(/색/등 중층적 집적효과.는 '육법이론'과 노 장불교적 우주관/자연관과 통하며 구체적으로 같은 맥락에서 두드러집니다.



아래동영상은 노벨 물리학수상자 Frank Wilczek 박사의 최근 MIT강연입니다 : 최근 얼마전 제네바에 설치된 The LHC (Large Hadron Collider)의 실험결과를 그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Introduction about the Lecture:

Listening to Frank Wilczek describe his research, one might not recognize simple English words, for they assume unfamiliar meanings in the context of physics. The deceptive lexicon of particles, forces and equations includes “up,” “down,” “flavor,” “color,” “strange,” “everything,” and the compelling “beautiful.” Rigorous science is conveyed in poetry and metaphor.

The springboard for this presentation is the final chapter of Wilczek’s new book, The Lightness of Being: Mass, Ether, and the Unification of Forces. For a sense of history, he first touches on breakthroughs of the 20th century that gave rise to conceptual revolutions: 1910 – theory of relativity; 1925 – quantum mechanics; 1970 – standard model of normal matter. He then broaches current exploration in particle physics and the promise residing in the Large Hadron Collider (LHC) near Geneva.

Just as Wilczek finds “standard model” too modest a designation for what it represents in physics – redubbing it “core theory” – likewise he upgrades the archaic notion of “ether,” more precisely naming it “the grid” to connote the essential structural material of the universe. As to examining the oxymoronic “dynamic void,” Wilczek explains that “to see something, you must disturb it.”

LHC experiments seek to give substance to the calculations of unified field theory, the quest to combine harmoniously the four fundamental interactions – gravity, electromagnetism, weak force, strong force. The LHC is the logical successor, extending the capability of the human eye, to Leeuwenhoek’s 17th century optical microscope and Rosalind Franklin’s 1952 x-ray images of DNA. As “an ultrastroboscopic nanomicroscope,” it advances seeing to new extremes of scale and resolution (temporally and spatially).

Through a virtual recreation of Big Bang conditions in a tunnel of 27 kilometers circumference, investigators endeavor to understand the nature of innermost space…as Wilczek terms it, “the deep structure of reality.” He intends no paradox in saying that the LHC will take pictures of “what appears to our senses as nothingness.” He emphasizes that the LHC is grand not only in concrete size but also “in every aspect of engineering and concept,” touting its distributed computing facilities at 100 sites around the globe as “the Internet on steroids.”

As a theoretical scientist, Wilczek hopes highly energized, accelerated protons will collide to reveal new subatomic particles, bolster the unification of forces, and confirm his postulate of supersymmetry. As a curious human, he embraces this massive effort with profound wonder and gratitude. In closing, he offers that “If you’re willing to make the investment to expand your mind, it’s an exciting time to be a thinking being!”









.


<선샹님! 사이 사이 라고만 이야기하시지 말구유~ 그냥 말을 안쓰시는 게 좋겠어요. 침묵...
그냥 사는 거구요! 그냥 또 그리세요!..
입을 꽉 다무세용.. 일자로! 꽉! 저절로 에너지/의미/의도/방향은 결정되겠지요?..
눈을 지그시 감고 줄 위에서 떨어질 각오를 하고 걸으세요! .
. ㅎ. 깜깜한 칠흑의 어둠속에서 줄을 타셔도 떨어지지 않으실거죠?>



현실(정치,종교,철학)에서는 미지의 실험이란 대개 급진적 모습이 띄는 까닭에
반(反,부정 Anti, Modern,Negative, Dada양상의 흐름에서는 쉽게 용납이 되질 않겠습니다.
왕따(Alienated Outsider)를 당하겠지요.
허나. ㅎ. 그래도 우리 화가/예술가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용기 있게 역사속에서 비행해야 됩니다.
전통과 정통으로 부닥쳐보는 시점도 역사에선 간혹 필요합니다.
순수하고 투명한 마음으로 안 밖 종 횡을 점검 해야 됩니다.>
또한 불새(Pheonix)처럼... 천상의 예술세계를 홀로 나르는 자유를, 그리고 외로움을 과감히 그리고 동시에 즐길 줄 아는 서구형 용기...ㅋㅋ. ㅠㅠ. ㅛㅛ yy.

기나미는 작가들이 귀속될 예술 세계가 있다면 궁극적으로는 다층적 통섭의 세계( 通攝,統涉,Multiple Convergent Boundary,)
정체공능(整體功能)의 세계 (Transmembrane World)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Converging into Multiple Planal World , Transmembrane World. 기나미가 만든 신조어..[정체공능이란 중국식(?)으로 표현인데 Membrane의 개념이 빠졌네ㅛㅛ]..
어찌하여튼
Plato, 이래....
Fichte, 쇼펜하우어.니체, 하이데거, 비튜겐슈타인,
노,장, 브라만, 힌두, 위빠쌰나. 삼시점(Space, time, Metaphor)들이
하나로 쪼그라져 줄어든 세계(Converging into one single point)가 되겠죠.
Deconstructed and Reconstructed Synthesis of Opposites: in betweens..
사이 사이 허(虛,Void, Emptyness) 속에 사이로 지속되는 에너지, 순수성, 절대성,
정(靜, Silence 공(空,Emptiness) 무(無,Nothingness),)의 세계입니다.
움직이는 실천적/ 창조적/ 생명력있는 역동적(動, Action, Movement) 세계이기도 할 것 입니다.



<선샹님! 거한 단어들만 화려하게 늘어 놓으셨는데 벽제 산 골짜기에서 쭈구리고만 계시면 되나요? 거하게 전시를 하셔야죠?
말로만 하시면 미술을 잘 이해 못하는 후학들에게 어떻게 책임(?)지실려구요 ?>ㅛㅛ.

기나미는 이곳 에서 몽유여신을 기다리고 있어
그녀가 나타날 때까지
^ㅎ^
기다려야 되

작가는 평생 좋은 작품들을 그냥 만들다 죽으면 됩니다..
무료하여 그림을 설명하려하니 단지 이런 언어들이 잠깐 필요했을 뿐..ㅎ. 당분간 말이 많아질테니깐..ㅛㅛ. yy.
^q^,,,















점차 궁극적으로 붓과 종이의 기본 개념에서 벗어나
Meta 전환,
전이( Convection,Transformation)되어
복합차원(Multi Dimensionality,Transmembrane world)으로
'심층감각의 구현'으로 새로운 키워드 컨셉으로 삼고 초점(Focusing point)을 옮겨 가겠습니다.(Converging into)
앞으로의 기나미의 미술은 당분간 작품세계는 컴퓨터 디지털 세계, 홀로그램, Micro, Macro-하이테크, Planetary 예술컨셉/양식과 맞물리게 될 것입니다.


효과적인 질료 재료의 실험이 검증 되어
넓혀진 빛/색/그림자/공간/ 마음의 실생활/과 조화되는 '그리드/스트링/운율'의개념들이
무한차원으로 재확장/재해체/재구조화 되어 갈 수 있겠습니다..

다시 오리와 토끼이야기로 넘어가자구요.

총알 같이 OSU 졸업 후 30년이 지난 지금
Youtube의 출현은 전세계에서 재조명되는 Wittgenstein 의 관점이 뒤늦게 조명 되고 있습니다.
30년전 내가 그의 글을 콜럼버스 캠퍼스 도서실에서 읽을때만 해도 그가 오늘처럼 대단한 영향을 주리라고는 생각치 않았습니다.
기나미가 붓을 모두 꺽어버리고 그만 둘려던 시기
그와 몇명의 서구 철학자들(니체, 쇼펜하우어, 브레흐트, 헤겔)의 관점과 글은 기나미에게 새로운 용기와 전기(轉機)를 주었습니다.
후에 자세히 이야기 할 기회가 있겠지만
'점'(Dot)을 그리고 있을 때 였습니다만..이 점을-붓을 싹뚝 싹뚝 톱으로 쓸어 버린 시체 즉 잘린 부분, 몸뚱이부분, 붓의 머리 부분으로-그렸는데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또 들었습니다.
아예 그림 속 의 선들도 잘라버리자. 형상들을 썰어 잘라버려! 그리고 다시 정리해!
그렇게 되면 언어 형상 의미 오상이 가져오는 혼돈과 모순 역설이 없게 될것이고
'창작의 순수한 문제'(The Issues of Creativity)만 남게 된다 !
오리건 토끼이건 간에 아니건 그렇건 간에 일단 이미지, 구조,선, 색, 농담, 모두 잘라 버려!
'오리와 토끼'의 이야기는 이렇게(?) 계속 추구되었습니다.
이즈음 Post-Wittgensteinian Deconstruction 그리고 Reconstruction 관점에 입각한 작업이 스튜디오에서 진행중입니다.
기나미의 세상(작품)을 새롭게 여러생각들과 마음들 빛과 그림자들이 계속 태어나고 있습니다.

왼쪽으로 보면 오리 그리고 오른쪽은 토끼의 의미로 전달됩니다.
하나의 형상이 두 의미를 전하게 되는데. ^ㅎ^
언어(Language)와 존재(being)가 하나로 통일 되지 않은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종교, 철학, 정치 에술세계에서 보듯, Derrida의 말처럼
언어와 Logo를 고집하면 할 수록 여러가지 복합적 논리적 모순점들이 더욱 수반되게 된다고합니다.
데리다와 웨튜겐쉬타인의 관점에 의하면 원래 Logo는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언어와 관념은 오리냐 토끼냐 하는 혼돈에 빠지는 까닭에
혼선과 충돌도 불가피하다고들 합니다.


작품 제작 과정에서도 흔하게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기나미는 혼돈스럽게 발생되는 의미론,기호성, 언어성의 복합성과 모순점을 제거하기 위하여
지금 생각하니 오리와 토끼의 형상을 죽인 것입니다.
ㅎ. 살생자! 기나미!.
단순히 형상을 해체(Deconstruction, Super-Imposition, Figure/Ground, Image/Structure,) 합니다.
그리고 재구성(Convergence)하고 통섭(Reconstruction)하는 과정에서
에너지의 Convection 현상이 뒤늦게 나타날때
조용한 침묵 에너지 세계(열반)가 뒤 늦게
형성 됨을 즐깁니다..
순수 조형 언어만이 남게 되면
순수한 운율과 기운, 구조의 총체적 빛, 소리, 색, 에너지, 그림자의 순수한 세계만 남습니다. 편안한 세계입니다.
처음엔 해체되어 무질서 해지겠지만
점점 요소들이 오케스트라처럼 재통합 재조화 구성되면서
다시 질서의 세계 논리와 인식 분석 종합 현상 경험의 세계를 뛰어 넘는
또 다른 환상적(?) Transmembrane(정체공능,다 Multi-Dimension 의 통섭) 의 세계가 되면
이것이 낙낙한 절대 '고유'의 세계. 그것이 기나미에게 주어집니다.












Four Seasons, 사계(四季) Oil on Canvas, (1984-1988), 6 Ft x 25 Ft





새로운 물질 재료 질료의 선택은
사람들의 옷과 같아서 선택하는 입장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오늘날의 도시주거환경과 상응 관계조화되기 위하여 꾸준히 변경 설정 되어 갈 것입니다.
기나미의 이즈음 화두는 '종이, 붓, 색, 그림자, 마음의 세계'가 어떤 질료와
어디서
어떻게
만나야 되는 것이냐 하는 '물음'가운데 있습니다.
새로운 질료들이 마냥 나오고 있는 이때..
붓과 종이의 세계는 디지탈 세계와 만나면 신나게 세련되게 변신 구체화될 수 있습니다..




< 선샹님! 작가가 이론적으로 '종이니 붓'이니 '돌이니 쇠'니 그럴사하게 이야기 하고 있지만
감정 이입이 전혀 안되는 경우는 어떻해유~? >
[선샹님! 순간의 순간의 아이디어
'빤짝'깨달음이 창작에 어떻게 직접적인 관계 된데유?]
장황한(?) 이야기도 물론 좋겠지만,
수줍고 '끈끈한' '은근한' '지긋한' '소리없는 아우성'들은 또 어떻게 해유?]


기나미에겐 열정과 감성/인성/땀이 깃든 작품들이 여전히 예나 지금이나 마음에 은은히 다가옵니다.
모던이건 아니건간에 여기나 저기에나.






천태만상의 작가의 마음이
천태만상의 오브제를 통하여
천태만상의 관객과 만날 수 있다면
그야 말로 짱! 하는 만남들일텐데
통섭과 일체(一切)의 이런 상황이
쉽게 들것에 들려 쇳덩이 돌덩이 있는 데 가보니
차가운 돌과 쇠일 뿐이로다















아이디어/의도/생각/실험적 물성을 가진 오브제만으로
관객을 매혹 시키는 기술의 정당성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때 뿐입니다.
고전(Classic Elements)이란
역사속에 내재해 흘러내려오는
최고의 정수들을..미적양식/스타일들로 다져가며 소중하게 숨겨진 상태로 남겨 두어야 합니다.
이어져 내려 보내야 합니다.
이런점에서 최고의 높은 경지의 작품들은 여전히 모던이즘의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고 봅니다.

-네오클레식 모던이즘- Neo-Neo Modernism이던 간에 오늘의 미술현장에 이어져야 할 것은 이어져 있어야 합니다.

모던이즘이 갖는 진정한 의미는
내려 와 있는 관행들 스타일 Convention들을 무조건 모두 버리라는 이야기가 아닐것입니다.
취사 선택은 각자 맘입니다. 기본은 종이 붓은 지켜야 합 니다.
통채로 버리면 아무것도 남지 않겠지요.










이제 그로부터 어언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다시 서울한 복판에서 옛
방식을 지금의 것과 합(合,Synthesis,Rearrangement,Reinvestigation)쳐 꿈을 꾸려 합니다.
앞으로 만들려는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1)오리이냐 토끼이냐의 관념적 언어적해석을 지양한다 (2)색, 그림자, 형상, 조형언어, 상형이론과 적용 방법론만 따진다/추린다/.
(3)기나미가 그동안 해왔던 작품에 관계된 동양의 이론과 서양이론의 핵심 주제만 짬뽕(?)시킨다.
(4)다른 세계와 일체 결부 시키지 않는다.
필요할 때만 비교한다.
< 에효! 선샹님! 왜 또 말쌈(싸움?)쪽으로 나가세유~? 이론이 필요 없다면서 또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모순이잖우요~!>

인간들의 언어속에는 뜻과 의도와 그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는 듯 합니다.
그걸 그냥 조형언어로 바꿀 수만 있으면 바꾸어보는 것은 괞찮다고 생각이 듭니다.

<선샹님! 저는요! 마음과 몸으로는 바꿀수는 있어두 붓으로는 안 되네유~! 그냥 몸으로 S S S 때울가 봐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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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미술의 변하지 않는 공통된 이슈가 있다면 어떤것일가요? ㅛㅛ










동양화론에서 언급된 육법이론, 형사, 사의에 관하여 관련된 부분만 올려놓겠습니다. 위트겐쉬타인의 작품 Philosophical Investigation과 그의 언어 중 특히 관심이 가는 면이 있습니다. 이론중 이른바 'Picture Theory' 는 동양의 화론 에서 이야기 하는 서화 동원 이론, 형사와 사의의 개념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이즈음 진행중인 그림들을 보겠습니다








아직 다섯 패널을 더 만든 다음
이어 보던가
십장생을 만들던가
몽유도원도 처럼 산수화를 만들던가..
^ㅎ^




작품에 관한 이야기는 지나간 기억 속에 점점 희미하게 희석 되어 가고 있으니
더 잊기 전에
옛 미완성 작품 속에 숙성시키려던 미완성 주제/화두를 직접 정리할까 합니다.
BR>
지금 이시점(時,視.詩点)의 기나미의 환경과 경험이 옛 것과 크건 작건 다를 수 밖에 없다면
어떤 까닭에 무엇이 어떻게 왜 다를 수 밖에 없었던가를 기나미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생각됩니다.











동서미술의 변하지 않는 공통된 이슈가 있다면 어떤것일가요? ㅛㅛ 창고 속에 남겨진 미완성 작품들 속엔 시행착오 모순의 흔적들이 30여년의 잊혀진 차이점(Velosities)을 두고 현현하게 남아 있습니다.
마땅한 장소에 옮긴 후 구체적인 생각을 캔버스에 새롭게 다시 작업화 시각화 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 그림들은 글자 그대로 뉴욕서울을 몇번씩 오가는 사이 주절 주절 갖고 다니면서 동가숙 서가식 틈틈히 만든 그림들입니다.
북화 남화의 전통(Gradation, Grids, Passages)을 수용함과 동시
삼원법과 원근법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거장들의 생각들 민화적요소 ,관념산수,서법 색상과 준법적 원칙을 가능한 지켰습니다.
오늘에 맞는정통 한국화란 한국, 중국과 일본의 것을 서구적인것과 조화돤
어제와 오늘 이쪽과 저쪽의 Hybrid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Central Park 59 St.












현재(2010/3/17) 구성중인 작품



하나의 화폭 속에 다른 차원의 그림들이 있고(畵中有畵) 그림들 속에 다른 차원의 시(詩,話,時 Languages, beings)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형상과 함께 문자를 이루려는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기나미의 言語/생각/기억이 곧 그림으로 만들어 집니다.
시작은 언어에서 부터 입니다. 그림(기나미 마음 의식)과 화폭과의 거리는 얼마나 되나요?
{Heidegger}
무한시간은 아닐런지요?
기나미가 그림인가 그림이 기나미 입니까?
그림과 글은 그 근원이 같다고 했습니다만 무엇이 같을가요?
(書畵同源,元)이라면 이 그림들의 근원은 어디서 시작했는 가요?
시중유화(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는 곧 무언(無言)의 세계인데, 말(Language, Sound)이 없으나 언어성(Metaphor, Linguistic,狀.想,像.床,箱)들이 있으니 말보다 더 깊은 침묵(Void, Ground,Nothingness, Absence,)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인턴 유리양은 주말에 모나꼬 #404 보조
보미양


기나미의 세계 는 쇼펜하우어/위트겐쉬타인/Searle/Chompsky로 이어지는 세계와
그리고 Wilcheck 이 말하는 현대 물리학의 지향점과 분명히 맥(脈)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기나미의 그림들을 보시면 'Dynasty' 'Four Season' 에서 추구하였던 주제가 그렇습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집어 보겠습니다.
(1)시간의 소멸과 해체 가 그것입니다.(Fig 2/4/6/)
(2)공간개념/메타포 그리드(Grid)의 설정이 그것입니다.
이는 “dynamic voids”를 표현하기위한 Ground Plan이 되겠습니다.
(3)색/에너지/구조/율동적인 허(虛,여백)는 입체적 구조를 전제로 존재합니다.
the archaic notion of “ether,” more precisely naming it
(4)색과 농담 형상과 구조 또한 외연과 내연의 상관관계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the grid” to connote the essential structural material of the universe.
(5) 무(無,空)의 실체는 총체적에너지의 집합체입니다.
.(6)자연과 인생속 /죽음과 삶의 대칭적 실체와 허구적 의미들이 반영되는 빛/그림자들의 실상입니다
.The deceptive lexicon of particles, forces and equations 은 As to examining the oxymoronic “dynamic void,”

(7)해체(解體) / 일체화(一體化)의 合
deconstructing and reconstructing to give substance to the calculations of unified field theory,
the quest to combine harmoniously the above fundamental interactions .

(8) Wilczek의 역(逆)의 관점은 기나미의 자유로운 마음과 방만하게 모인 빛의 거울입니다
explains that “to see something, you must disturb it.”
기나미는 에너지를 창출하기 위하여 여백과 형상을 지웠다 살립니다.
(9)지속적행위는 내 마음 속 자유 그리고 해방입니다.
.오리와 토끼는 새가 되어 서울과 뉴욕을 오갑니다...
.^ㅛ^
오리토끼 Fig 2. Fig 4.Fig.10 Fig 9.
^ㅎ^
(10)해체속의 자유로움 소멸속의 재생. 불새의 자유로움은
윌첵의 마음을 뚫고 저 안드로메다 상공을 비행하고 있습니다
윌체크는 이렇게 말합니다.
"If you’re willing to make the investment to expand your mind, it’s an exciting time to be a thinking being!”

기나미는 본질과 오상의 구조를 빛과 형상의 가상 속에서 창조합니다.
“the deep structure of reality.”
그러니까 지향점이 라 한다면'침묵(오상)속의 언어성'을 시각적으로 구체화 한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11) 무엇을요?

<선샹님! 갑자기 문체가 달라지시네요>
What appears to our senses as nothingness.”(Void)이란 표현이 정확할 가 합니다.
“the grid” to connote the essential structural material of the universe.
새로운 공간개념의 설정을 위하여
오리토끼 Fig. 8/9/10
Seeing to new extremes of scale and resolution (temporally and spatially)
(12) 이 역시 '실천과 용도' '행동력과 기운력'을 추구하기위하여
빠진 마음과 실체 안/밖 여기/저기,위/아래의 세계를 만나기 위한
허구 와 실체가 함께한 모순된 상황인데 이럴땐 진실(The Deep Structure of Reality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겠습니다.
(Configurations and Illusions)입니다. Fig 2/4/6/8

이쪽 저쪽을 따지다 보면

전통의 형식성이라는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방법론적 개혁
The deceptive lexicon of particles, forces and equations과
적응/파급/전파/이라는 역할이 불가피합니다.

조십스럽게 음미하여 이야기 해야 될 것입니다..잘못되면 대칭의 붕괴가 이루어집니다.
^ㅛ
^ 철학적 이슈/용어와 미술의 방법론적 양식적/미학적용어는 고금(古今)을 불문하고 대체로 근원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특출한 시점들을 제외하곤 세계 역사와 문화속에 내려오는 법문이나 격식 고전적인 미학적 가치 기준은 유행처럼 대체로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닐것이나
지역과 시대와 상황마다 요구하는 합당한 언어들이 다른것은 분명합니다.
이에 대하여는 천천히 그림속에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먼저




^y^



아래 Blue Hill Art Center(Peral River,Orangeburg NewYork 소재)에 올렸던 20여년전의 엘레나 하트니와의 인터뷰 글을 올리고
지금의 생각과 그림들을 비교하여 중요한 시점들을 요약하여 설명할까 합니다.








A Synthesis of Opposites: Deconstruction/Reconstruction
The Origin of the Neo-Classical Deconstructivism

In an interview in 1987 with Eleanor Heartney, Kyu Nam Han talks:
"I live between two worlds.
My concern is global."

When I am in Korea I interpret Korean Modernism within the Western cultural context
and
when I am in New York interpreted the western Modernism within Eastern cultural context.

I accept all the cultural value criteria and conventional methodologies
as ‘perspective’, ‘chiaroscuro’ of the West
and
‘passage’ ‘grid’ from the East.

I apply Eastern methods on the traditional western perspective painting. I apply calligraphic principles on the Western painting.
I recreate new images; new series of pictorial hieroglyphs.”
I look at the nature in search for a series of hieroglyphic structural form and its content.
I read its structural relationships and its metaphoric contexts;
its meaning variances and its metaphoric concepts:
a synthesis of opposites;

(1) Figure/ ground; (2) image/ structure (3) signifier/signified (4) inside/outside (5) language/being (6) perspective/flatness together.
These ambivalent elements are converging into one single totality.
The ontological relativity and meaning variance become one.
A sense of totality, Barthes called this “a chain of meaning” ;
Heidegger, “presence-a meaning of being”;
for Husserl, it was “transcendental consciousness”
; Unknown Korean Punchong potter it was “writing and painting”.

Painting to me is writing and writing (calligraphy) to me is painting.

In writing/ painting cityscapes and landscapes are the passages from Structuralism to post-Structuralisms and Neo-Classicism of the West and Neo-Classicism of Sung in China are the elements of starting point of views.

My approach to the issues of meaning and truth is the processed perceptions and premises
in the fusing and operating of genetics of different cultures
that depend upon the drawings and upon these a promiscuous variety
of similar sources,
from Wittigenstein to Heidegger.
John Searle
Noam Chompsky
Schopenhauer
among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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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작년 말 벽제 산속에서 이곳에 내려오기전까지는 위트겐쉬타인과 쇼펜하우어를 생각하고 있었지요.
여기 아래 다음글 324 325 들을 아직도 잇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곳 강남 서울 심장에 내려오니 마음이 산에 있을 때와는 달리
직접 밖의 이야기, 생활, 인간(작가)들과 함께 대화를 하게됩니다.
이즈음 기나미의 도시생활이란 밖의 리듬과 열정이 거꾸로 내 속으로 비추어져
새로운 의식의 규준으로 내 마음을 다시 흔들고 있는 다른 시점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뉴욕에서 돌아온 율구와 런던에서 디자인 작업중인 오마





오마 장세경은 현재 작업실을 구축중





Underconstruction



Photobucket









^Q^









창고에 남겨진 미완성 300여점의 작품을 계속 정리하고 있습니다.
원래 미국스튜디오에서 이를 완성할 생각으로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였는데
사고가 연속 난 이후 기나미가 처해있는 이모저모 현실을 따져보니 이곳이 실질적이고 만드는 작업이 미국보다 쉽고 합리적이고 자연스럽겠다하여
부티끄 #404 에 머물기로 하였습니다. 나누어서 그림을 보여주어야겠습니다.


일어나시게! 그리고 신나게 뛰어!



뛰기엔 역시 뉴욕, 만들기엔 서울이 좋은 선택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쉽게 좋은 분들과 소통할수있는 점 확실하게 서울의 재료에 서구의 방식을 접하여
'양식과 주제의 새로운 변신'을 추구 할 생각을 하니 흥분이 되기도 합니다.
지난번 맨하탄 거리들을 기억과 컴퓨터로 더듬어 잠실에서 만들었 듯
이번엔 직접 한복판 서울의 거리/풍경/인간들을 확인하며 이모저모 기나미 스타일로 그려보겠습니다.
^ㅎ^


<선샹님! 큰소리 치시면 마( Devil,魔)가 끼잖우요ㅛ 조용히 만드세요!)






.

그동안 공백을 가진것은 결코 아니였습니다.
제도권 밖에서 제도권 안보다 더 열심히 했다고 생각됩니당..

..제도권 안이란 무엇인가요.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며 현실적 여건 조건과 함께 더불어 만들며 산다는 말 일겁니다.
그런데 이쪽과 저쪽 밖의세상을 동시에 쉬지 않고 팽이처럼 오고 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뉴욕과 서울. 서울과 시골을 자의반 타의반
떠도는 방랑벽(?)을 갖고 사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
마음(Mind)의 안정과 생산을 제대로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죠. 글쎄..
. 참 많이 있겠지요. 처음 잠깐 버릇이었는데 오래되어 습관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림을 그리려하니 할 수 없는 선택들이였습니다.
알을 낳으려면 둥지가 있어야 하니깐.
붓 한자루 가방 한개. 동가숙 서가식 버릇만으로만은 아니되겠지요?
여기 저기 둥지에 몰래 숨겨둔 알들을 부화시킬 일만 남았습니다.

> <각설하고 원래이야기로 돌아 갑니당?> 공백이 아니라 실은 현실/도피/은둔이란 표현이 더 맞을 듯 하겠지만 실은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였습니다.
그냥 제도권이든 화랑권이든 한국문화권이든 뉴욕문화권이든
벗어나고 싶은 생각때문이였습니다.
마음을 먹으니 실제로 그렇게 되더라구요 내가 선택한 시간과 공간의 주위엔 붓/종이/컴퓨터/화실의 재료만 있으면 된깐...

자의반 타의반 잠수(?) 조금 더 진하게 솔직하게 말한다면
이 오랜 방랑은 궁한 끝에 선택한 만행(?)의 연속일 뿐이였습니다.
산과 계곡, 강가를 싸돌며 살면 마음만은 편하게 되겠지만...ㅉㅉ. 그게 어디 편한 것을 찾으려 했기 때문인가요?.
인생을 뜻에 맞추어 확실하게 살려는 거창한 케치프레이즈가 있었기 때문도 아닌데..
.ㅇ. ㅜ. ㅎ. ㅠ.
시간만 허비잡아(?)먹다보면
간간 못된 주위의 후학들의 웃음거리를 피할 수가 없는 것.




















..이야기.
생각.
의식,
마음,
언어의 교환
관념/의식/마음/언어의
실행/실천/전환/상승.

앞으로는 아예 작정을 하고 이곳 404 studio 공간에서 당당히 이야기 할것입니다. 도시인들 산인들 인간들이던, 자화상이던, 컴퓨터 디지털 이미지이든 상관되지 않습니다. 다른 작가들과 다른 표현기법/그릇/모양새/알파/오메가를 담을수 있으면 되겠지요?















2010년 구정은 고유한 명절 모두 귀향길에 오른듯 기나미가 오가는 강남역 주위의 식당 거리는 썰렁했습니다
구정 아침
강남역은 텅 비었습니다. 강남역은 역시 사람들이 있어야 활력있는 서울의 심장일 듯
데헤란로와 강남대로가 만나는 곳 서울 어디로든 버스들이 오갑니다.
삼성센터가 있는 곳 아파트에서 나와 한가로이 주위를 걷습니다.



화실 속의 ^Q^ 는 화실 밖의 ^Q^와 다르면서 같고 같으면서 다른듯합니다.


<선샹님! 갑자기 맛이 가셨나유? 안과 밖이 따로 있시요?>

몽유여신님

구정 아침부터 또 시비?
<안을 보면 안이고 밖을 보면 밖이 잖우요?><
그림을 그릴땐 마음이 내 안에 있게 되고 아니할땐 마음이 밖으로 향하는걸 모르시나유?
탱자 탱자 언어놀이 천번을 해 본들 무엇하리요?



아무소리 않고 답답할 때 그림에 점 한점 긋고 잇는 것이
천번 만번 말과 글을 읊조리는것보다 기나미에겐 더 소중한 찌릿함(?) 이 있습니다.
무언의 생각 ,느낌, 논리성, 언어성, 모든게 색,선, 형상으로 변신되어
잠깐의 꿈, 그림, 생각, 마음으로 압축되기 때문일가요?







미학과 철학 종교가 항상 과학과 예술과 따로 거리를 두고 비행/병행할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1)이쪽/저쪽, 여기/저기. 안/밖, 지금/미래를 하나로 묶지 못하는 인간들 삶의 한계;
(2)그 모순들 때문이겠습니다.
.







<선샹님! 정적과 어둠을 먹고 살던 시절 언제나 변함없잖우요~?>





이보시게

나는 원래 이쪽 저쪽 안 따지고 그냥 날라다니는 새일세.






동쪽 서쪽 안따져요.





왼쪽(Left)이냐 바른(Right)쪽이냐 하는 이념의 문제가 날으는 자에겐 별 문제가 안 되지요
. 그냥 움직이는 것일세. 비행기의 날개는 두날개가 평형을 이루지 않으면 곤두박질을 하게 되겠지.
덩치큰 몸체를 균형을 갖게 하려면
계속엔진을 돌리고 날라야 됩니다. 그래야 여기저기로 움직이겠지요?










쉬엄 쉬엄 조용 조용 .
지금 기나미는 강가에 내려 앉은 새가 아니라 충전을 하기 위해 대로에 불시착한 비행기일 뿐입니다
<선샹님! 까막소 저작거리에 내려 앉아 꺼윽 꺼윽 하늘둥지 그리워하는 홍천강 재두루미는 아니예유?! 선샹님! 까마귀/참새들과 잘 지내세유>
이보시게 가끔 저들이 진정한 학으로 보일때가 있어요.
나는 '변방에서 우짓는 그냥 새' 길 잃은 철새의 시대는 갔는가 보이.
내 혼령이 저 멀리 가고있는 것이 보이는 구려...









새해엔 안과 밖 이쪽 저쪽을 확실하게 따질 터






^Q^





o
v
e





^you^









부티크모나꼬 뒷골목에는 학원들이 줄 지어 있습니다. 716호. 헤커스학원 ㅎ. 영어를 가르치고 있느냐구요?
아니요! 한국을 배우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한국을 떠났던 분들이 서울에 돌아와 겪는 첫번째 수지 맞는 공짜 강의를 듣는 고통을 기나미도 겪고 있는듯 합니다.
첫번째 훈련/수련/수양은 가능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쉽고 자연스럽게 읽는 방법부터 배워야 되는 듯 싶습니다.
새해 첫주부터 흥미진진해 집니다.
산골짜기에서 우아하게(?) 강남에 내려앉은 후에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여러 즐거운 시간들도 이어집니다.
앞으로도 생각의 차이점들을 발견 어떻게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할수 있는가 라는 점에서 고수(?)들과 계속 만나게 될 듯 합니다..
코메디언처럼 말을 잘하면 좋으련만
버벙할 수 밖에 없어 듣기만 합니다.
역시 '만남의 미학'열정을 나눌 수있는 대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선샹님! 작품으로 대화를 하는 방법은 없나유?>
< 쉬트라빈스키/간딘스키. 마티스/피카소같은 대화 말이예유~!>































l
o
v
e







이태주박사 이동일 박사 Jim From London 뒷풀이는 끊기지 않고 두고 두고 이어질 모양









파리 제 7대학에서 문학박사 코스를 밟으신 김관오 교수







어제(2월 6일) 양평 김영재 사장 스튜디오에 강호의 여러 현인들이 모였습니다.
건축, 사진, 영화, 연극, 평론, 미술, 의상, 컴뮤니케이션, 철학, 미학,
우리들은 3차를 거치며 단계 단계 장소를 옮기며 여러 분야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었습니다.
기나미는 좋은 말씀들을 듣고만(?) 있었습니다. 박사님들이 참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김관오 박사 홍가이 박사 ㅎ.
기나미는..
동가숙 서가식 방랑박사(?).

















아담한 사진 스튜디오 양평 동오리




이병주PK Master 그리고 RUBINA 패션 박미연 사장




배은주 이보미 박미연님




김일권전남대교수
오늘의 호스트 김영재사진작가





홍가이 박사 이지송 작가/감독






김연숙박사 김일권작가,김영재사진작가/사장




이승룡 작가/건축, 홍가이박사, 황성욱 조각가 ,이정태님,김광근사진작가




배은주님 영어 교육에 총력을 기우리시는 베태랑




이정태님 삼청동 달항아리 사장님 해박한 삶의 지혜는 배울점이 너무 많아 듣고만 있어도
기분이 ^Q^


김광근 사진 작가


김관오 철학박사




배은주 김영재작가





원정 걸음 이보미양 최연소 판화작업을 스튜디오에서 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커플 이지송감독 이보미양





































^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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